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George Fredric Handel)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George Fredric Handel)
1685.2.23 ~ 1759.4.14

음악의 어머니이자 바로크 작곡가. 독일의 삭소니주 할레에서 태어나, 1759년 영국에서 영면했는데, 이 74년의 전 생애 중 47년간은 영국에서, 27년간은 독일에서 살았다. 9세 때부터 오르간 연주자인 F.차하우에게 사사하여 작곡의 기초와 오르간을 공부하였다. 그후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한때 할레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18세 때 함부르크의 오페라극장에 일자리를 얻어 이때부터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20세 때 오페라《알미라 Almira》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오페라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가 로마에서 A.코렐리, A.스카를라티의 영향하에 실내악을 작곡하는 한편 피렌체·베네치아에서 오페라 작곡가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1710년 하노버궁정의 악장으로 초빙되었으나 휴가를 얻어 방문한 런던에 매료되어 1712년 이후는 런던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오페라의 작곡가로 활약하게 되었다.

1712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오페라를 작곡, 상연하고 1718∼1720년에는 찬도스 공작의 후원 아래 종교음악의 명작《찬도스 앤섬 Chandos Anthoms》11곡을 작곡하였다. 또 1719년에는 주로 이탈리아오페라의 상연을 위해 ‘왕립 음악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다른 두 이탈리아인 작곡가 G.B.보논치니, A.아리오스티와 함께 그 지배인이 되었다. 1728년, 아카데미를 재건, 헤이마게트극장을 근거로 한때 옛날의 인기를 되찾았으나 1733년 경쟁상대인 보논치니의 이탈리아오페라와 또다른 오페라 회사인 귀족오페라에 밀려 두 번째 극장을 폐쇄하게 되었다. 1734년 세 번째로 이탈리아오페라의 기치를 들고 코벤트 가든 오페라극장 경영에 나섰으나 3년 후인 1737년 마침내 건강악화와 경제파탄으로 오페라 작곡가 겸 극장 경영자로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1732년, 약 15편의 오라토리오를 헤이마케트극장에서 연속 연주하여 점차 오라토리오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1739년 다시 건강을 회복해 왕성한 창작력으로 1741년에 고금의 명작 오라토리오《메시아》를 작곡하였다. 그리고 1751년 작곡하던 중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실명한 후에도 오라토리오의 상연을 지휘하는 한편 조수의 도움으로 구작의 개정에 힘썼다. 헨델은 오페라(46곡), 오라토리오(32곡) 등 주로 대규모의 극음악 작곡에 주력하였지만 기악방면에서도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1726년에 영국에 귀화하였고 사후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대성당에 매장되었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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