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5.7 ~ 1897.4.3

고전파, 독일의 작곡가. 엘베강구에 면한 독일 최대의 항만 도시 함부르크에서 극장 관현악단의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요한 야코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는 4남매로 누나 하나와 동생 둘이 있었으며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우고, 음악의 기초를 배우고 음악의 재능을 일찍 나타내고 있었다. 7세부터 도시의 교사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0세 때는 음악회에 나가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자, 부모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의 재능을 이용하여 치부할 생각이었지만, 코셀은 이를 반대하고 당시 부르크 제일의 음악가였던 마르크스젠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얼마 후 가난한 살림을 돕기 위해 편곡이나 술집의 피아니스트로서 일하는 한편 작곡도 조금씩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작곡법, 고전음악의 가치, 음악의 견실한 구성법과 이론을 배웠는데, 이는 그의 음악적 생애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1850년까지는 브람스의 고난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가정 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가계를 돕기 위해 곳곳으로 일을 하러 다녔고, 바이올리니스트 J. 요아힘을 알게 되어 1853년 그와 함께 연주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 그는 슈만 부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브람스의 재능을 높이 사 각 방면에 소개하여 음악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슈만의 부인이며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와의 우정도 깊어졌다. 1857∼59년까지 그는 공적인 지위를 얻어 데트몰트궁정에서 피아니스트로 근무하며 작곡에 몰두하였다. 1862년 가을까지는 함부르크에서 합창곡의 작곡과 합창단의 지휘를, 1863년에는 징아카데미합창단의 지휘차로 초빙되었다. 1865년 어머니의 죽음을 추도하는 작품에 착수, 1868년 대작 <독일 레퀴엠>을 완성하고 1869년에는 슈만의 셋째 딸 유리에에 대한 그의 실연을 노래한 <알토랩소디>를, 1871년에는 <승리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1872∼75년까지는 빈음악인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그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지휘하였다. 이 경험을 살려 1876년 <교향곡 제1번>을 작곡하였다. 1878년 이후 매년 걸작을 발표하였고 1879~1890년까지 수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1891년, 1894년에는 클라리넷을 포함한 실내악곡을 썼다.

1896년 그의 친구이자 슈만의 처였던 클라라가 졸도한 후 병세가 악화되자 <4개의 엄숙한 노래>를 작곡하였다. 클라라가 세상을 뜬 뒤 브람스의 건강도 눈에 띄게 약해져 이듬해 4월 5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페라 이외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작품을 남겼으며, 독일 음악의 전통을 보수적일만큼 존중하며 견고한 구성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R. 슈트라우스, A. 드보르작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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