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년 12월 11일 ~ 1869년 3월 8일)는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다. 1830년에 발표한 《환상 교향곡》으로 유명해졌다. 베를리오즈는 "표제 음악"(Program music)이라는 새로운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창시했다. 베를리오즈는 전세대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폰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von Gluck) 그리고 후세대인 리하르트 바그너나 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특별한 음악가문 출신이 아니었으며,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베를리오즈를 의사로 키우고 싶어했지만, 베를리오즈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면서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이미 음악원 시절부터 악기의 표현력에 관심을 기울여 교수들과 자주 싸웠던 베를리오즈는 음색과 효과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는 평을 받으며 후기 낭만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주장한 베를리오즈는 문학과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곡 활동을 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파리에서 음악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적을 만들었고, 생전에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프랑스 음악계로부터는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프랑스 음악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그가 죽은 후였다. 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곡을 많이 만들었다. 프랑스 작곡가로서는 예외적인 대규모 기악곡의 창작에 몰두, 프랑스 특유의 섬세한 감정과 관현악법에 의하여 감미로운 음색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대담 분방한 표현은 때때로 격정적인 폭발에 도달하기도 한다. 또 그는 스스로 베토벤의 사도로 자처하였고, 또 그 영향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외관은 그다지 프랑스적이지 않지만 작품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음의 원조법적 사용, 음의 선명한 배합, 명쾌한 선율 등은 극히 프랑스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평생 빈곤하게 지냈다.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환상 교향곡>이 있는데, 이 음악은 '표제음악'의 대표적 성격을 지닌다. 그의 음악 세계는 문학과 음악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던 그답게, 음악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된 베를리오즈는 "표제 음악"이라는 새로운 관현악곡을 기법을 창시했다. 그는 악기의 음색과 효과를 최대한 이용 환상과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를 위해서 베를리오즈는 대규모의 관현악단을 조직했다. 베를리오즈의 데뷔작이자, 대표곡인 《환상 교향곡》의 경우 문학적 사실 묘사를 교향곡의 각 부분과 연결하고 있다. 환상 교향곡외에도 《파우스트의 여덟 장면》(1828년 ~ 1829년), 《이태리의 해롤드》(1834년), 《로미오와 쥴리엣 독창과 합창》(1839년), 《죽음과 승리의 대 교향곡》등도 마찬가지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들도 이런 양식을 따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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