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낭만파

낭만파적 현실주의에서 후기 낭만파


 


프랑스에서는 독일보다도 뒤늦게 낭만주의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 대표는 베를리오즈였다. 그로부터 리스트·바그너에 이르는 표제 음악에 의해서 낭만파의 가장 혁신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현대 음악의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작품에서는 심리적인 표현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표제의 소재와 음악의 구조가 완전히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되어 음상징으로서의 음악이 확립되었다. 따라서 역시 베토벤에서 출발하였으면서도 슈만의 표제 음악 판타지와는 전혀 다르다고 하겠다. 또한 세 사람 가운데에서도 그 의도하는 바는 서로가 달랐으며 베를리오즈와 바그너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를 볼 수 있다. 당시 이 새로운 표제 음악의 분야는 음악가에 그치지 않고 문학자나 미학자들 사이에서도 깊은 관심 거리가 되었다.


 



19세기 후반의 음악


 


19세기 후반의 음악은 전반에 비하여 질적으로 약간 변화한다. 낭만파가 음악의 어느 방향에서 새 국면을 개척하였는가 하면 우선 음의 상징적, 색채적 효과에 주목하여 감각적인 즐거움을 증대 시키고 기능 화성의 확대를 했다는 점에 있겠다. 낭만파는 이것을 오페라와 기악 음악에 병행하여 시도하였으며, 특히 쇼팽, 베를리오즈, 후에 리스트의 기악곡에서 명료한 형태로 발전이 시인 됨으로써 음악적인 힘의 전적으로 새로운 면으로 정착하였다. 19세기 후반의 음악가는 낭만파의 방향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기간이 주어졌다. 즉 낭만파의 양식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특징을 보편화하는 원숙한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바그너, 베르디, 비제, 브람스, 브루크너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경향은 이것을 전제로 하여 비로소 공평하게 이해할 수 있다.


 


 


 


출처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


목록